BUSY THUG LIFE (비지떡 라이프) EP.2

2019년 8월 6일 업데이트됨

바쁘고 쪼들리는 10-20대를 위한 민지와 민수의 예산한정 덕질 & 라이프 스타일 보고서




합정 LP 바 (민수)

예산 : 2만원


간헐적 음주인의 단골 펍이자, 아는 사람들은 알 만한 합정의 LP 바 '블OOOO'. 박쥐가 나올 것 같은 포스트펑크 트랙부터 술맛이 달달해지는 인디팝까지, 그리고 손님이 적어지는 열한 시가 넘어가면 김광석 노래까지 나오곤 하는 곳. 여기를 찾는 큰 이유는 심각한 고인물 취향이 범벅된 신청곡 리스트를 건네드려도 가게 곳곳에서 음반을 찾아 흔쾌히 틀어주시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사장님의 ‘판떼기’ 컬렉션이 대거 판매용으로 정리해 두셨다는 소식을 듣고, 비지떡 에디터들이 얇은 지갑을 들고 출동했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곳이지만 동그란 LP판 모양 네온 간판은 늘 반갑다. 어제 다녀간 민지 에디터를 아시냐고 물었더니 사장님이 “와, 그 친구 어떤 걸 고르는지 보려고 일부러 레어한 명반들을 곳곳에 끼워뒀는데, 귀신같이 찾아서 뽑아가더라 -“ 하며 셀렉능력에 찬사를 보내신다. 이 자리에 없는 그에게 마음속 박수. 과연 민지 에디터의 고급 취향으로 한없이 높아져버린 사장님의 기대치에 걸맞은 음반 쇼핑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디깅을 시작한다. 한적한 시간대에 방문해서 사람도 별로 없고, 좋은 음악도 계속 틀어주신다… 하는 찰나 뽕끼 가득한 90년대 비트가 흘러나와서 약간 뇌가 비틀거렸다. 그런 흥의 여파였는지 첫 구매로 Happy Mondays의 Step On 싱글 판을 고른다. 곧 있을 FAKE VIRGIN의 90년대 테마 파티에도 어울릴 법한 90s 주크박스 대표곡. 5000원 낙찰이다.





이것저것 뒤섞여있으니 잘 찾아 골라가라는 사장님의 말처럼 박스마다 정말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었다. Erasure, Smithereens, Grace Slick, 이름은 알지만 썩 손가락이 멈추게 하지는 않는 판들을 여럿 지난다. 그러다가 무려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이 함께 서 있는 커버에 떨리는 손가락이 머문다. Iggy & Ziggy Cleveland '77 라이브 레코딩. 하지만 세상에 판 하나가 15000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집으로 데려와야 했나 싶지만 2만원 한정 예산의 비지떡 (busy thug) 에디터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우선 다음 박스로 넘어간다.


두 번째 박스에선 마음을 빠르게 뛰게 하는 판을 발견한다. 바로 Underworld의 'Dinosaur Adventure 3D'! 세상에서 제일 멋진 노래 제목이 아닌지... (가사엔 공룡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 그림도 없는 새카만 싱글 커버도 마음을 잡아끈다. 일단 챙기기로.



엘피를 몇 장 더 휘리릭 넘기니 갑자기 Pet Shop Boys 레코드들이 대거 등장한다. 조신한 신스팝 그이들이 무표정으로 포즈를 잡고 있는 ‘Rent’ 싱글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박스에서 뽑아 들어 소중히 품에 챙겼다. 현재 아시아에서 한국만 빼놓고 투어를 돌고 있는 그들을 보니 음반을 껴안은 마음 한쪽이 아파 온다. 물론 Pet Shop Boys 그들은 잘못이 없지만... 한국의 수요가 잘못이지만... 몇 년 전 f(x)와 합동 무대를 펼쳤다가 싸늘한 반응을 마주한 그들의 무대도 생각이 난다. 싱글 하나에 5000원이라니 동묘에서 봤던 웬만한 정규 앨범 가격이었지만, ‘Rent’ 는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해서 데려가기로 마음먹는다.



와중에 같은 박스 뒤쪽에서 발견한 Depeche Mode 의 'Policy Of Truth' 싱글은 10000원, 그 옆 New Order 의 충격적 음치노래 'Touched By the Hand of God' 은 10000원 에 팔리고 있었다. 이런 걸 보니 아마도 이번 박스는 팔려가는 신스팝이 테마인듯 하다. 유독 신스팝 명곡들에 높은 가격 책정이 된 데에는 가게 이름 'Blue Monday' 도 한 몫 하지 않았을지 실없는 추측을 해 본다. 문득 궁금해진다. 수요 부족으로 한국에 오지 못하는 신스팝 대표 3팀이 (Pet Shop Boys, New Order, Depeche Mode)한국을 방문한다면 어떤 공연이 제일 성공적일지… 이 글을 읽고 계실지 모르는 전국 곳곳의 공연 기획사 관계자 분들께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지 강력 권유드린다.


이제 박스가 하나 남았다. 아직까진 전부 싱글들만 고른 상태에서, 과연 마지막 박스에선 숨은 보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지난번 동묘에서 커버 디자인만 보고 성공했던 헨델 앨범을 생각하며 이번에도 마지막 선택은 운에 맡겨보기로 한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 컷 아웃 콜라주가 멋진 GD Luxxe 가 눈을 잡아끈다. 약간 Protomartyr의 콜라주 커버 느낌도 나고, 뒷면의 트랙 리스트는 손으로 한 낙서같이 쓰여있다. 여튼 이미지로는 종잡을 수 없는 장르의 앨범이다. 호기심으로 선택한다. 집에 가져가서 틀어 보니 3일 정도 폐인처럼 유튜브 알고리즘을 돌리면 등장할 것 같은 스타일. 하지만 그 또한 마음에 든다. 사랑하는 싱글 3 장과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앨범 1장, 이번 비지떡 라이프도 성공적이다.


합정 LP 바 (민지) 예산 : 2만원



술. 일단 맛이 없다. 너무 쓰다. 또 몸에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란 내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 음주란 썩 내키는 문화가 아니다. 따라서 오직 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바를 드나드는 행위는 내 인생 총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그 횟수가 적은 편. 그만큼 음주 문화와 거리가 먼 필자다.

하지만 합정역 인근에 자리한 이곳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유를 설명하면 너무 장황해지니, 내가 이곳 사장님께 3년 전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후 3년간 단 한 번도 찾아간 적 없었다는 것만 알아두길.

고마움을 잊고 살 정도로 내가 야박했다고? 절대 아니다. 고마움은 가슴 한쪽에 지니고 살았지. 다만 입장할 명분이 없었다. 술도 못하는 내가 오직 음악을 듣기 위해 바이닐 바를 들락날락한다는 게, 그 모양새에 괴리감을 느꼈었지. 아무튼 그래서 3년간 찾아가지 못했고, 사장님과는 가게가 아닌 길거리 여기저기서 만나 장난스러운 꾸짖음을 듣곤 했다.


그런 내게 마침내 스스로 바 문을 활짝 열고 입장할 명분이 마련되었다. 에디터 민수가 '비지떡 라이프 EP.2' 디깅 장소로 '블OOOO'를 추천한 것. 추천받은 시간은 밤 10시 무렵, 평범하게 귀가하던 와중, 때마침 합정역을 지나칠 때쯤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젠가, 굳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라고... 슬로 라이프를 지향하지만 이럴 땐 머리와 몸이 재빠르게 돌아간다. 그렇게 훗날의 귀차니즘을 미리 방지하고자, 피곤함을 무릅쓰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늦은 시간 바이닐 펍으로 향했다.



첫 번째 박스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Underworld 와 Depeche Mode, New Order 등 80, 90년대를 수놓던 영국밴드의 싱글 12인치 바이닐들이 내 손을 휙휙 지나갔다. 가격도 만 원을 넘어가지 않아 적당하니, 일단 머릿속에 기억만 해두고 다음 박스를 뒤적거리기 위해 옆으로 조금 기었다. 두 번째로 확인한 박스엔 첫 번째 박스보다 조금 더 과거에 활동한 밴드, 이를테면 Jethro Tull, Mike Oldfield, YES, Emerson Lake & Palmer 등, 현재 '프로그레시브 록' 혹은 '아트 록'이란 이름 아래 묶어낼 수 있는 음반들로 가득했다. 이 또한 내 취향이었으나, 내겐 오랫동안 고민할 틈이 없었다. 신데렐라와도 같은 바이오리듬이 나를 다음 박스로 재촉한다.


휙휙 뒤적였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체됐던 것일까? 사장님은 무슨 앨범을 찾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멋진 바이닐이 있을까 싶어 뒤적거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사장님은 "막 뒤섞여 있으니깐 잘 찾아봐요"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느끼기론 음반이 뒤섞여 있다기엔 장르별로 잘 정리된 매대인 듯했다. 이전 두 박스와 마찬가지, 세 번째로 확인한 박스 또한 장르별로 잘 정리되었으니.

이 박스엔 Dizzy Gillespie, Art Tatum, Branford Marsalis, Kenny G 등 재즈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의 음반이 한데 묶여 있었다. 나는 속주로 대변되는 두 뮤지션, Dizzy Gillespie와 Art Tatum, 그리고 두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 Branford Marsalis 와 Kenny G 를 각각의 카테고리에 묶어 경합시켰다. 그리고 머릿속 찰나의 경합에서 Dizzy Gillespie 와 Branford Marsali 가 승리하였다. Dizzy Gillespi 를 고른 이유는 Art Tatum 판 가격보다 오천 원이나 더 저렴했으며, 스윙보단 비밥을 더 좋아한 개인적 취향이 크게 작용했다. Branford Marsalis 가 승자가 된 이유는 Debussy 의 인상주의부터 후기 낭만파 Stravinsky, Gabriel Faure 등의 고전음악을 로맨스라는 주제 아래 색소폰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에 혹했다. (이 또한 오천 원.)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시침이 11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다시 급해졌다. 바로 옆 7인치 바이닐과 함께 수북이 쌓인 흰색 박스엔 Iggy Pop, David Bowie, Sonic Youth 등이 있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더라. 이번엔 목표 비용을 초과하기 싫어서, 일단 Underworld 를 구매할 생각으로 다시 첫 번째 박스로 돌아갔다. 그런데 다시 뒤적이다 보니 Christoph De Babalon 의 바이닐을 발견했다. 'Fat Cat Records' 라는 생소한 이름과 함께 Split Series #10 이란 라벨이 붙어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레이블이었으나, Christoph De Babalon 의 음악은 익히 들어, 어떤 스타일을 구사할지 이미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침 가격도 오천 원이겠다, 반가운 마음으로 Christoph De Babalon 과 Underworld 를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하여 Dizzy Gillespie, Branford Marsalis, Underworld, Christoph De Babalon 총 넉 장의 바이닐을 이만 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이번엔 미션 성공이다! 사장님은 내 디깅 능력에 감탄하시며 칭찬을 하셨다. Underworld, Christoph De Babalon 같은, 비교적 오래됐거나, 한국에선 인기 없는(?) 전자음악 바이닐을 고른데 감탄하신 것 같았다. 사실 오래 앉아있던 탓에 다리가 너무 저려서, 저렴한 바이닐을 빨리빨리 골라 집으로 갈 생각만 했던 셀렉의 결과였기에, 그 감탄의 칭찬은 너무나도 과분했다.

이번 역시 깨달은 점이 있다. 장소를 성급히 고르지 말자. 그리고 허약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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