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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스러운 FAKE VIRGIN 에디터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앨범들 중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앨범과, 조금은 더 느린 속도로 사라질 앨범을 21세기 만국공통어 이모지로 가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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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na Grande
'thank u, next'
(2019.2.8, Republic Records)
악재를 헤쳐나오는 방식에 아리아나 그란데 (Ariana Grande) 만큼 우아하고 파워풀한 전례가 있을까. 이전의 'Sweetener' 가 빅네임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피쳐링으로 뒷받침된 앨범이었다면, 이번 'thank u, next' 는 아리아나가 자신만의 목소리로 펼쳐나가는 챕터이다. 가수 본인의 개인사와 그로부터의 극복에 주제를 둔 앨범이지만, 듣는 누구든 단번에 사로잡을 앨범이기도 하다. “I want it, I got it” 을 만트라처럼 읊으면 머릿결도 은행 잔고도 차오르는 느낌에 빠진다.
더 이상 짜여진 듯한 팝송 공식 속에서 고음을 뽑아내는 아리는 없다. 진솔해진 목소리로, 가볍지만 당당하게 노래하는 스타일이 새로운 행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빌보드 차트 1,2,3위를 동시에 거머쥐고 연일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기만의 색을 찾은 Ariana Grande 가 흔들리지 않는 톱 스타로 자리매김했음을 확신할 수 있다.
by띠용

Yak
'Pursuit Of Momentary Happiness'
(2019.2.8, Third Man Records)
런던의 3인조 밴드 야크 (Yak)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전 재산을 털어넣어 앨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전직 가구판매원, 정비공, 탑맨 모델이자 현직 YAK 프런트맨 올리 버슬렘(Oli Burselm)은 이번 신보를 소개하며 “어차피 시대에 뒤떨어지는 기타음악을 할 거라면 최선을 다해 진솔한 메시지라도 담으려 했다” 고 코멘트했다. 정확한 현실 직시의 결과물 [Pursuit Of Momentary Happiness] 는 사운드적으로도, 가사 면에서도 신선하다. 사회 구조와 백인 우월주의, 유해한 남성성을 비판하는 듯한 목소리는 지금 UK 펑크 씬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새 트렌드와도 맥이 닿아 있다. 폭발적인 포스트 펑크 색부터 영화처럼 서정적인 트랙까지 다양한 사운드를 담았지만, 그 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상대적으로 고요한 부분들이 지닌 존재감이다. 8분 33초나 되는 트랙 ‘This House Has No Living Room’ 으로 마무리되는 앨범 후반부는 숲 속에서 햇빛을 바라보고 서서 눈을 감은 기분이다. 빈집을 지키는 유령같은 목소리의 J스페이스맨 (J Spaceman) 피쳐링도 서늘하고 따뜻하다.
by 띠용

Beirut
'Gallipoli'
(2019.2.1, 4AD)
듣자마자 뇌에 새겨지는 강렬한 음악이 있다. 그런가 하면 여러 번 들을수록 마음에 자리잡는 음악도 있다. 베이루트 (Beirut) 의 잭 콘돈 (Zach Condon) 이 만드는 음악은 후자에 가깝다. 데뷔 이래부터 Beirut는 이국의 느낌을 빌려와 아름다운 사운드스케이프를 빚어왔다.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인 'Gallipoli' 는 지중해 여행지의 숙소에서 느즈막히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형광등 켠 아파트 방에서 이 정도의 감회를 느끼게 해 준다면, 야외 라이브는 눈물도 독소도 빠지는 영적인 경험이지 않을까. (발표된 올해 일정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에서만 투어를 도는 듯 하니, 여건이 되는 분들이 대신 직접 확인해주시길.) 오래 기억에 남는 가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는 없다. 'Landslide' 처럼 비교적 구조가 또렷한 몇 곡을 빼고는, 비유나 형용사 없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분위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이번 앨범이 밍밍하다는 건 아니다. 첫 타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않아도, 햇빛처럼 풍경에 스며드는 체험으로 자리하게 될 음악이다.
by 띠용

Panda Bear
'Buoys'
(2019.2.8, Domino Records)
2018년 11월 판다 베어(Panda Bear) 의 앨범 [Buoys] 발표 소식과 동시에 공개됐던 트랙 'Dolphin'을 처음 들었을 땐, 애니멀 콜렉티브(Animal Collective)의 최근 앨범 [Tangerine Reef] 와 비슷한, '바다' 를 주제로 삼은 앨범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생겨, 조금의 기대를 했건만, 결과는 너저분하다. 돌고래보다 앙증맞은 물방울이 더 연상되는 샘플 콜라주 트랙 'Dolphin'과 에뮬 게임에서나 들릴 법한 샘플로 공백을 메꾼 트랙 'Cranked' 등에서 키치함에 조금의 귀여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앨범 전체 멜로디는 반복적 코드 진행의 기타가 전부라 심심하며, 딜레이와 리버브를 가득 머금은 노아(Noah) 의 시그니처 보컬은 앨범 [Buoys] 에선 조화를 못 이루고 방향을 잃은 듯, 여기저기를 부유한다. 마치 바다 위 외롭게 떠다니는 부표처럼.
by Ronin

Folamour
'Ordinary Drugs'
(2019.2.15, FHUO Records)
프랑스 리옹 기반의 DJ/프로듀서 폴아무르(Folamour). 그가 발표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Ordinary Drugs] 는 처음 필자의 눈에 들어왔을 때부터,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이라는 오글거리는 말만 머릿속을 계속 맴돌 뿐, 이외 적절할 추천 문구가 딱히 떠오르지 않더라. 실제 앨범을 들어보니 더욱이 그랬다. 먼저 앨범을 개괄 하는 첫 트랙 'Intro' 에서부터 빗소리에 일상을 빗대어 스토리 텔링을 시작한다. 이를 곧바로 이어받은 트랙 'Underwater Memories' 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뒤로 나열된 하우스 뮤직 또한 과장되지 않고 차분히 반복되는 게, 댄스홀보단 평범한 일상에 더 잘 달라붙는다. 이를 두고 폴아무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삶의 기쁨과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들로 채워진 작품." 따라서 본 앨범은 폴아무르의 일상을 그득히 함유한 '마약'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일상과도 많이 닮아 있는 평범하며 일상적인 마약.
by Ronin

Thom Yorke
'Suspiria Unreleased Material'
(2019.2.22, XL Recordings)
앨범 러닝 타임이 13분에 불과하며, 비록 B-Side에 가까운 EP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톰 요크(Thom Yorke) 의 필름 스코어링 데뷔 앨범 [Suspiria] 와 같은 궤도의 음악인데. 또 최근 피아노 왈츠곡 'Suspirium'이 오스카 영화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되기까지 했으니, 이를 그냥 간과하고 지나치긴 힘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리메이크 영화 '서스페리아(Suspiria)' 를 아직 보지 못한 것. 따라서 이 앨범을 논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그 형태마저 추상적이라, 어떤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제작된 음악인지, 조금의 힌트도 자비도 없다. 다만 이 오싹한 사운드에 한 달 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서스페리아' 의 한국 개봉을 더더욱 기대할 뿐이다.
by Ron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