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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CHFORK 이달의 앨범 ('19년3월)

최종 수정일: 2019년 7월 30일


까탈스러운 FAKE VIRGIN 에디터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앨범들 중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앨범과, 조금은 더 느린 속도로 사라질 앨범을 21세기 만국공통어 이모지로 가려낸다.




Billie Eilish

'WHEN WE ALL GO TO SLEEP, WHERE DO WE GO?'

(2019.3.29, Interscope Records)


빌리 아일리쉬 (Billie Eilish) 에게 불만이 있다면 이번 앨범 커버를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직접 얘기해보라.

직진밖에 모르는 패기와 타고난 송 라이팅 능력이 결합된 2001년생 Billie Eilish 의 음악은, 기성세대의 뇌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앞서나가고 있다. [WHEN WE ALL GO TO SLEEP, WHERE DO WE GO?] 에는 TV 시트콤 샘플, 숨넘어가게 웃는 비하인드 씬 녹음본, 유리를 깨고 사이렌이 울리는 온갖 소리가 액션페인팅처럼 흩어져 있다. 그 결과물은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유튜브 세대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영화에 걸맞은 사운드 디자인이다.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Bad Guy’ 나 ‘You Should See Me In A Crown’ 에선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는 고스 청소년임을 자처하다가도, “when the party’s over” 의 담담하게 마음을 잡아끄는 페이스는 근래 들었던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절절하다. 스포티파이로 재생하면 보이는 루프 애니메이션에도 눈이 간다. 수업 시간 노트 구석에 그리던 낙서처럼 익숙한 느낌의 이미지들이다. 어른스럽고, 치명적이고 완벽한 척 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팝의 세계에서 이런 있는 그대로의 감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점은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결코 잠깐 왔다가 사라질 스타가 아닌, 판을 바꿔나갈 뮤지션이라는 것을 Billie Eilish 는 이렇게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다.

by 띠용



Nilüfer Yanya

'Miss Universe'

(2019.3.22, ATO Records)


작년 11월, 내한공연을 왔던 Puma Blue 와 친구들은 을지로 택시 안에서 미래를 점치고 있었다. 런던에서 무명에 가까운 동료 아티스트가 첫 앨범을 녹음하고 있고, 곧 팀의 세션 드러머와 함께 Interpol 의 북미투어 서포트밴드로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모든것이 불투명했던 그때로부터 넉 달이 지난 지금, 닐루퍼 얀야 (Nilüfer Yanya) 는 성공적인 투어를 마치고 스타의 반열로 날아가는 궤도가 확실해 보인다. 데뷔 앨범이라는 점이 무색할 만큼 훌륭한 ‘Miss Universe’ 는 미래적이고 공기처럼 가벼운 사운드 속에 격정적인 내면에 대한 가사를 녹여냈다.

하얀 살균 장갑으로 혀끝에 올려주는 달콤한 알약을 삼키면, Yanya 의 목소리로 녹음된 가상의 건강 케어 서비스 WWAY HEALTH™ 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해외 페스티벌 라인업들의 아랫단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그녀의 이름이 점점 위쪽으로 치고 올라올 것은 분명하니 미리 기억해 두자. 이미 'The XX', Broken Social Scene 그리고 Sharon Van Etten 등이 투어 오프너로 선택한 아티스트, '나만 아는 가수' Nilüfer Yanya 를 듣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by 띠용



Sigrid

'Sucker Punch'

(2019.3.8, Universal Island Records)


재작년 BBC 방송국 녹화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의상실 스태프들이 게스트들을 리터치하기 분주한 가운데, 시그리드 (Sigrid) 는 맨얼굴에 청바지, 체크 남방 차림에 마이크 하나만으로 그 자리의 모두에게 차세대 팝 스타 강림을 알렸다. (그날의 녹화는 조회 수 100만이 넘는 레전설 라이브가 되었다.) 그 감동을 마음에 그대로 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발표된 이번 데뷔 앨범을 정말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Sucker Punch’ 는 인공 감미료가 들어간 쉐이크를 급하게 마신 기분이다. 여느 팝 앨범처럼 검증된 맛이지만, 차별화되는 점은 찾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Mine Right Now’ , ‘Don’t Feel Like Crying’ 등에서 특히 짙게 느껴지는 80s 유로 팝 스타일 프로듀싱이 오히려 Sigrid 의 가벼운 목소리를 누르는 느낌이다. ‘Don’t Kill My Vibe’ 등의 솔직한 에너지로 팝 차트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으며 자기 색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던 가수에겐 이것보단 좀 더 큰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좋은 시작임에는 분명하다. 앞서간 많은 성공적인 팝스타들도 이렇게 시작하며 점차 아이덴티티를 굳혀 갔기에, Sigrid 가 꾸준히 팝 차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성장하리라는 점은 전혀 의심치 않는다.

by 띠용



The Cinematic Orchestra

'To Believe'

(2019.3.15, Ninja Tune)


특별한 일러스트나 어느 사진 한 장 없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CINEMATIC' 타이포를 전면에 큼지막이 박아놓고, 빈티지한 텍스쳐를 휘갈겨놓은 커버 아트. 수많은 별이 뜨고 지는 시기, 그 당참과 간결함에 당황할 새도 없이 확인해본 앨범은 [To Believe]. 이는 시네마틱 오케스트라(The Cinematic Orchestra)의 새 앨범으로, 무려 12년 만에 공개된 정규작이다.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 10년이라는데, 1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들은 별 탈 없이 잘 지냈던 모양. 바이올린 선율이 이루는 '시네마틱' 한 사운드가 이를 방증한다. 또한 앨범에 담긴 가스펠 소울 보이스는 '시네마틱' 에서 한층 더 나아가, 세피아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만든다. 이를테면 모제스 섬니(Moses Sumney)의 목소리가 담긴 'To Believe', 그리고 이들과 끈끈한 정을 맺고있는 하이디 보겔(Heidi Vogel)이 참여한 'A Promise' 같은 트랙들이 그러하다. 이런 아련한 착각 덕분에 낙엽이 저물어가는 늦가을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으나, 해석의 여지는 언제든 열려있었다. 화사한 꽃이 만개한 4월 어느 벚꽃 축제, 벚나무 아래 앉아 조용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천천히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생각한 것이다.

by Ronin




Karen 0, Danger Mouse

'Lux Prima'

(2019.3.15, BMG)


3월 한 달간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데 게을렀나?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앨범, 즉 글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자면, 본 미디어의 에디터 Stel에게 앨범을 추천받아서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게 지금 내 실정. (따라서 3월 Bitchfork는 Stel의 지분이 절반을 넘었다)


좌우지간, 추천받은 앨범 [Lux Prima]는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의 보컬 캐런 오(Karen O)와 데인저 마우스(Danger Mouse)의 협업 앨범이다. 각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작품과 처음 마주한 순간 압도당해 앨범을 멍하니 들어본 기억. 멍한 기억 중 손꼽히는 순간은 앨범의 첫 트랙 'Lux Prima' 의 시작 파트를 들을 때 였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 표류하듯 신비롭고 공허하며 불길함이 뒤엉킨 묘한 감정을 유발하는데, 이는 흡사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의 'Shine On You Crazy Diamond' 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반면, 이 공허하며 신비로운 주제가 앨범 전체 중 찰나에 가까운 순간에 불과한 지라, 아쉬움이 컸다. 또한 Karen O를 무척이나 배려한 듯, 이해할 수 없이 꾸역꾸역 집어넣은 변주의 미학에 조금 당황하며 들은 앨범.

by Ronin




Michael Abels

'Us(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2019.3.15 Back Lot Music)


조던 필(Jordan Peele) 의 첫 번째 필름 "겟 아웃(Get Out)" 의 사운드 트랙은 어느 것 하나 내 머릿속에 기억 남지 못한 반면, 그의 두 번째 필름 "어스(US)" 는 흥얼거리기 쉬운 코드를 영화 사운드 트랙 내 반복적으로 등장시킴으로 스토리 만큼이나 사운드 또한 기억하기 쉬웠던 것 같다. 최면 혹은 데자뷰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반복적 사운드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데, 오프닝 시그널로 사용된 트랙 'Anthem' 의 코러스와 'I Got 5 On It' 에 등장하는 맑은 신시사이저 코드가 그 예시. 특히 'I Got 5 On It'의 맑은 신시사이저 코드가 점점 느리게, 스트링 피치카토를 거쳐, 디스토션으로 평행을 이뤄 'Pas De Deux' 까지 귀결되는데, 여기서 무거운 중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허나 이 중압감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관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 트레일러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니.

by R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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