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탈스러운 FAKE VIRGIN 에디터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앨범들 중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앨범과, 조금은 더 느린 속도로 사라질 앨범을 21세기 만국공통어 이모지로 가려낸다.


Tyler, The Creator
'IGOR'
(2019.5.17 Columbia Records)
2019년 새로운 앨범을 공개하리란 사실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침착하게 기다렸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리고 그 기대에 보란 듯이 2년 만에 새로운 앨범을 들고 나왔다. 이번 작품은 이전 앨범들과 완벽히 다른 작품이며, 랩 앨범 또한 아니니, 그냥 들으라 신신당부한 바, 덕분에 첫 번째 트랙 'IGOR'S THEME' 에서부터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 고전적이며 무거운 신시사이저, 그리고 이를 서포트하는 Bob Welch의 둔탁한 브레이크 비트 샘플을 빌려온 점에서 '넥스트 레벨에 다다른 앨범이다.' 라고 미루어 보았지만, 트랙이 거듭될수록 새롭다기보단 어딘가 익숙하다. 앨범 전반적인 분위기는 마치 [Flower Boy]의 연장 선상에 놓인 듯, 백킹 보컬과 신시사이저로 배합된 화음을 유연하게 풀어 놓은 느낌. 여전히 캐치한 멜로디를 통해 말랑말랑한 사랑을 주제로 노래하고 있다고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사랑이 아닌, 사랑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끊임없는 변덕을 주제로 노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비현실적 기괴함과 가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그가 새로이 개척하고 있는 대중적 노선엔 호불호가 따윈 존재하지 않으니 언제나 환영한다.
by. Ronin

Carly Rae Jepsen
'Dedicated'
(2019.5.17, Schoolboy/Interscope Records)
아직도 칼리 레이 젭슨 (Carly Rae Jepsen) 을 'Call Me Maybe'로만 알고 있다면, 당장 이번 신보 [Dedicated] 를 들을 것. 작년 Robyn 의 앨범을 좋게 들었다면 무조건 [Dedicated]을 들을 것. 어쨌든 한 번은 속는 셈 치고라도 들을 것을 강력 권유한다. 콧대 높은 평론가들과 힙스터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이런 훌륭한 작품을 가질 자격이 없지만, 어쨌든 Carly Rae Jepsen 은 멋진 컴백 앨범을 들고 우리에게 돌아와 주었다. 가볍고 부드러운 뜀뛰기로 시동을 거는 ‘Julien’ 으로 시작해서 더없이 세련된 타이틀곡 ‘Too Much’와 ‘Now That I Found You’ 까지 듣다 보면,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정석 팝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Carly Rae Jepsen 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저격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지독한 노력의 결과라고 하니 (이번 앨범에 실릴 열다섯 트랙을 추려내기까지 그녀는 200곡에 달하는 노래를 썼다고 한다) 그 몰입력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유리로 된 댄스플로어 위를 가볍게 날아다니는 비트로, 지금부터 한여름까지 질리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시원시원하고 달콤한 팝 앨범이다.
by 띠용

Vampire Weekend
'Father of the Bride'
(2019.5.3 Columbia Records)
솔로 프로젝트에 매진하겠다며 2016년 밴드를 돌연 탈퇴한 로스탐(Rostam Batmanglij)의 빈자리를 매꾸는 것. 이는 본 앨범 작업에 돌입한 에즈라 코에닉(Ezra Koenig)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쉽게 메꿔지지 않을 그의 공백. 하지만 Ezra는 대책을 찾아냈고 되려 Rostam의 공백을 야심으로 가득 매워버렸다. 그 야심이자 공백의 대안이 바로 앨범 [Father of the Bride]. 과거 뉴욕에 국한됐던 커버 아트는 뉴욕 또한 포함하는 지구로 확장되었으며, Ezra는 이 지구의 중심에 군림한다기보단 여전히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하려 들고 있다.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는 먼저 이전 디스코그라피를 감싼 흩뿌연 안개, 모노 톤, 비비드 톤 등의 필터를 말끔하게 걷어내고 밝은 코드를 앨범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이례적인 사운드를 통해 이를 본격적으로 보조하기 나섰다. 이를태면 트랙 'Harmony Hall'에서 무드 전환을 위한 비브라슬랩, 'Sympathy' 에서의 라틴 리듬, 'Flower Moon'에선 피치가 어긋난 듯한 보코더를 차용하기 까지. Rostam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대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이력으로 활동하는 뮤지션, Danielle Haim, Mark Ronson, Bloodpop ,Steve Lacy 등을 끌어들이는 데 이르렀고, Hans Zimmer, S. E. Rogie, Haruomi Hosono의 과거 이력에서까지 멜로디를 빌려 자신의 살에 덧대어 붙였다. 결과는 성공적. Rostam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챔버 팝 적 스트링 사운드 디자인까지 스스로 고안해냈으니, 착한 야심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땅!땅!땅!
by. Ronin

Morrissey
'California Son'
(2019.5.24, BMG Records)
이달의 앨범 코너를 편성하면서 이모지 평가표를 만들었을 때, 설마 쓰레기통 이모지를 쓰게 될 일이 정말로 생길 줄은 몰랐었다. 모리세이 (Morrissey)의 이번 [California Son] 은 커버 앨범이다. 그 뜻인즉 그가 사과를 전해야 할 뮤지션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째서 그 자체로 담백하게 좋았던 Joni Mitchell, Bob Dylan, Roy Orbison, Carly Simon 의 곡을 이렇게까지 묵직하고 거추장스러운 느낌으로 재해석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과잉 모리세이 사태'는 Bob Dylan 커버 곡인 ‘Only A Pawn In The Game’ 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비록 사람과 작품은 떼어놓고 감상해야 한다고 감안하더라도, 최근 극우 집단 지지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 어째서 민중가요와 저항 노래들만 골라서 커버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 모든 의문점 사이에서 모리세이의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The Smiths 시절처럼 아름답고 우울하기에 청취자의 혼란과 괴로움이 가중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 커버 앨범의 원곡 버전들만 컴필레이션해서 들으면 12곡짜리의 꽤 멋진 플레이리스트를 얻을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다. 혹시나 이 앨범을 청취했을 구독자들을 위해 회복을 위한 원곡 12곡 플레이리스트를 첨부한다.
by 띠용

Slowthai
'Nothing Great About Britain'
(2019.5.17, Method Records)
태국과는 아무 관계 없다. 옆구리에는 모나리자 타투를 하고, 그릴을 끼운 이빨 가득 언제나 무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슬로우타이 (Slowthai) 는 영국 그라임 씬 수면 바로 아래 즈음에서 한동안 때를 기다려 왔다. 그리고 혼란한 때에 등장하는 민중의 영웅처럼 드디어 Slowthai 의 시대가 열리는 듯하다. 브렉시트 (Brexit) 전후로 느낀 감정들을 총집합해 적었다는 타이틀곡이 보여 주듯, 근래에 들은 힙합 중 가장 대놓고 정치적인 음악이자 카타르시스가 끓어 넘치는 앨범. 뜨거운 팬 위에서 자글자글 튀는 콩 같기도, 쇠를 긁어 대는 듯도 한 거친 스타일이 완성도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독보적인 목소리와 중간 없이 밀어붙이는 에너지 덕이 아닐지. Mura Masa 와 함께한 'Doorman', Skepta 와 함께한 'Inglorious' 등 콜라보레이터들의 목록도 화려하다. 이번 앨범은 Slowthai 가 그동안 내놓아 보였던 싱글들과 새 트랙들을 한데 엮은, 숙련된 신인의 역량을 제대로 전시해 주는 데뷔 앨범으로 남을 것이다.
by띠용

Flying Lotus
'Flamagra'
(2019.5.24 Warp Records)
앨범 [Flamagra] 의 첫 트랙 'Heroes' 공개 시기가 작년 이맘때며 첫 공개 당시 본제는 'Heroes Pt.5'.(첫 공개 당시 곡엔 인트로의 나레이션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Post Requisite'의 공개 시점은 2017년이란 사실. 67분, 27개의 트랙이란 전례 없는 거대한 서사의 탄생 배경이 지난 2014년 앨범 [You're Dead!] 이후 레이블 Brainfeeder의 운영, 영화 [Kuso] 제작 등으로 바쁜 와중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작업한 트랙들, 심지어 영화 [Kuso]에 수록된 사운드 트랙까지 재활용하여 묶어 놓았다. 따라서 폐기물 처리소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 예측하였으나,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 이하 Flylo)는 이러한 예측을 보기 좋게 뒤엎었다. Flylo만이 가지고 있던 글리치한 스타일은 조금 제쳐두며, 진입 장벽이 낮은 대중적인 노선을 선택하였는데, 이게 [Flamagra] 만이 지닌 고고한 매력이다. 또한 각각의 트랙은 묘하게 닮아있다. 그 이유엔 앨범 전체에 관여한 부하 직원이자, 동료 Thundercat 과 Brandon Coleman의 영향이 지대했다. 화려한 베이스와 신시사이저 아르페지오. Brainfeeder 의 두 장군이 참여한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청취의 가치를 지닌 앨범이다.
by Ronin
